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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일반

12궁과 신살이야기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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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서의 춘추번로와 음양

 

그는 계절과 방위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음과 양을 설명합니다. 봄은 동, 여름은 남, 가을은 서, 겨울은 북쪽이죠. 1년은 12달이 있으며, 12()으로 표시할 수 있는데, 자월 축월 인월 등으로 표시됩니다. 1년을 24개의 절기로도 표시할 수 있죠. 달력을 보면 입춘 우수 경칩 . . . 등으로 대략 15~16일 간격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인월의 시작은 입춘일부터 시작되고, 사주팔자로 표시되는 간지력으로는 인월 입춘을 1년이 시작된다고 정했습니다. 양력 11일고, 음력 11, 그리고 인월 입춘일은 다르죠. 양력 11일은 신정이라 해서 1년의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구정이라고 해서 음력 11일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간지력으로 11일은 인월 입춘일입니다.

 

절기력으로 본다면 1년 중 낮이 제일 긴 날이 하지(夏至)이고, 밤이 제일 긴 날이 동지(冬至). 하지와 동지로 지가 2개이므로 이지(二至)라고 할 수 있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 두 번 있는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지만, 이 날부터 낮이 길어지는 날은 춘분(春分)이라 하고, 날부터 낮이 짧아지는 날은 추분(秋分)이라고 합니다. 춘분과 추분으로 분이 2개이므로 이분(二分)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1년을 크게 나누어 이분과 이지를 합하여 이분이지(二分二至)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춘추번로라는 책은 기원전 2세기경, 지금부터 2천년도 전에 쓴 책으로, 읽는다 해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기와 양기가 사방 사계의 어디에서 언제 생기고, 어떻게 이동하며 변해 가는지 설명한 내용이 있는데, 읽는다 해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죠.

 

그런데 동중서가 춘추번로에서 말한 음양, 즉 음기와 양기의 발생과 이동에 관해 풍우란이란 중국 철학자가 중국철학사에서 자세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춘추번로만 읽으면 동중서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인데, 풍우란이란 분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음양의 발생과 변동 자체에 관한 내용이 4개의 방위와 4개의 계절, 1년을 12달로 나눈 12지지, 1년을 24개로 나눈 24절기 등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풍우란의 쉬운 설명조차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음양의 발생과 이동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좀 인내가 필요하죠. 동중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는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12운성에 관한 다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으니까요.

 

옛 중국인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공전이라고 하죠. 1년이 지나면 제자리에 돌아오고, 다시 시작합니다. 하늘에 길이 있다면, 태양이 이 길을 따라 1년에 한 바뀌 도는 것이죠. 태양이 다니는 이 길을 하늘을 의미하는 천()에 길을 의미하는 도()를 합하면 천도(天道)라는 말이 만들어지죠. 천도란 하늘길이라는 의미죠. 이 하늘 길, 즉 천도를 따라 태양은 매년 한 바뀌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또 다시 돌기 시작하는 것이죠. 마치면 다시 시작하고, 마치면 다시 시작하니 끝이 없습니다. 하늘 길, 즉 천도는 원이라는 둥근 선을 따라 도는 것이므로 360도 도는 것이고, 날수로는 365일 하고도 5시간 조금 더 걸리게 되죠. 이게 1년입니다. 이것을 4계절과 4방위로 나누면 90도로 나눌 수 있고, 12월로 나누면 30도로 나눌 수 있으며, 24절기로 나누면 15도로 쪼개진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지에 낮이 가장 길다 했고, 동지에 밤이 제일 길다고 했습니다. 이건 우리나라가 위치한 지구 북반구의 중위도 부근에서는 사실이고,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 남반구의 중위도 부근에서는 사실이나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죠. 그래서 이 세상의 가운데라고 생각했던 나라의 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中國)의 옛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죠.

 

()이란 태양(太陽, )을 의미하고, ()이란 태음(太陰, )이죠. 해와 달로 대표될 수도 있는 개념입니다. 하지에는 낮이 제일 길기 때문에 양이 제일 많다고 할 수 있고, 동지에는 밤이 제일 길기 때문에 음이 제일 많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음과 양을 합하면 그 양()이나 시간은 항상 동일합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24시간 중 하지에는 낮이 18시간이고 밤이 6시간이며, 동지에는 낮이 6시간이고 밤이 18시간이죠. 이건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지구 북반구의 어느 한 지점의 경우가 그렇다는 겁니다. 심지어 북극에서는 하지에 하루 24시간이 낮이랍니다.

 

동중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보았겠죠. 그는 틀림없이 자신이 옳다고 여겼으므로 춘추번로라는 책에 그 내용을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거나 그 이후 지금까지 사는 사람들이 볼 때 동중서의 이 주장은 틀림없는 것이라 여겼죠. 이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인들의 사유방식이나 사상에 그냥 자연스럽게 베어들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럼 동중서의 주장을 들어봅시다. 지금부터 2천년 이전에 살았던 분의 얘기를 들어본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 아니겠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사주팔자 명리학을 얘기하시는 분들의 12운성에 관련된 여러 가지 터무니없는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일년 중 자월에 해당하는 낮이 제일 짧은 동짓날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방위로 보면 북쪽에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며, 낮에 해당하는 양() 또는 양기(陽氣)가 생기는 곳은 북쪽이고, 생기는 시간은 동짓날입니다. 장소라는 공간과 방위라는 계절이라는 시간이 결합된 곳이죠. 시간과 공간이 결합되기 때문에, 시공간(時空間)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낮이 점점 길어지므로 방위로는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시간으로는 춘분을 향해서 이동합니다. 그러다 남쪽으로 이동하며, 시간으로는 하지를 향해서 이동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짓날에 양() 또는 양기(陽氣)가 최대가 됩니다. 이제 서쪽을 향해 이동하며 추분에 양이 많이 줄어들고, 동짓날 최대로 줄어들겠죠. 태극기의 둘로 나눈 부분에서 거의 0에 가까운 지점이 되므로, 절대치로 본다면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또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양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양이 생겨나서 커지는 방향으로 본다면 북에서 동, 동에서 남이고, 다시 작아지는 방향으로 본다면 남에서 서, 서에서 북이 되고, 북에서 다시 생겨나고 커지고 작아지고, 그러니 양은 커지고 작아지는 게 원을 중심으로 본다면 동 남 서 북, 동 남 서 북의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은 午月에 해당하는 밤이 제일 짧은 하지에 생겨나서, 점점 커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겠습니까? 서쪽으로 가야하고, 가을 쪽으로 가야죠. 그러다 제일 커지는 곳이 북쪽이고, 겨울이며 동짓날에 제일 크게 되죠. 밤이 제일 긴 날에 음이 제일 양()이 많다고 해야죠. 그러다 음은 봄이 되면 양()이 줄어들고, 여름이 되면 제일 적게 되죠. 그러다 하짓날 다시 음이 생겨 점점 커지다 최대로 커진 다음 다시 작아지기 시작하죠. 음이 커지고 작아지는 게 원을 중심으로 본다면 서 북 동 남, 서 북 동 남의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보면 결론적으로 방위로 보면 함께 한다고 할 수 있죠. 즉 음과 양은 동 남 서 북이던, 서 북 동 남이던 함께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계절의 순서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죠. 또 계절과 방위는 함께 갑니다.

 

이와 같은 설명이 가장 그럴듯한데, 놀랍게도 동중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반대로 생각한 것인데, 그의 생각 또한 그럴듯합니다. 하루 24시간은 변함없습니다. 음과 양을 합하면 24시간이 되는데, 단지 음에 해당하는 시간이 더 많으냐, 양에 해당하는 시간이 더 많으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음이 커지면 양은 줄어들고, 양이 커지면 음이 줄어들죠. 음과 양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죠. 음은 점점 적어진 다음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돌고, 양은 점점 커진 다음 점점 적어지는 방향으로 돈다고 본 것입니다. 음과 양이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생각은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방향을 생각한다면 음은 점점 적어진 다음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도니, 북쪽에서 최대가 된다음 서쪽으로 돌아 남쪽을 거쳐 동쪽을 돌아 북쪽으로 돌아옵니다. 양은 점점 커진 다음 점점 작아지는 방향으로 도니 북쪽에서 동쪽을 돌아 남쪽을 거쳐 서쪽을 돌아 북쪽으로 돌아옵니다. 계절이나 방위는 함께 가지만, 즉 시공간은 함께 가지만 음과 양은 성질이 정반대이므로 시공간을 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양은 시공간과 함께 갑니다. 하지만 음은 시공간을 거슬러 반대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양이 가는 길과 음이 가는 길이 다릅니다. 양은 하늘길, 즉 천도(天道)에 부합하고, 음은 하늘길, 즉 천도를 거스르는 거죠. 이 주장이 춘추번로의 양존음비(陽尊陰卑)’란 장()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양존음비란 양은 존귀하고 음은 비천하다고 했습니다. 남존여비란 사상이 근거 없이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죠. 하지만 그 근거라는 게 터무니없는 동중서의 날조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동양 문화는 하도와 낙서에서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어느 게 하도이고, 어느 게 낙서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는 주자학의 나라답게 하도와 낙서를 확실히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도는 16(겨울), 27(여름), 38(), 49(가을), 510(계하季夏, 未月)라고 하죠. 숫자 진행은 1 2 3 4 5로 진행합니다. 하도의 순서에 의한다면 계절은 겨울 여름 가을 계하(季夏 未月)의 순서로 진행해야 맞겠죠. 숫자가 1 3 2 4 5라는 순서로 진행한다고 여기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하도가 맹랑한 것처럼 동중서도 맹랑하게 보이는 생각을 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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