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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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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정용구 / 주택관리사

 

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주민들 중에는 별사람이 다 있다.

걸핏하면 직원들을 짜른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여자는 술 먹고 우리 집으로 전화해서 집사람한테 소장 바꿔달라고 횡설수설하는 사람도 있고그래서 공사할 때 이후부터는 집으로 오는 전화는 내가 받지 않는다.

어떤 땐 자기 집 보일러가 고장나 안 돌아간다고 하면서 주민은 추위에 떨고 있는데 소장은 잠을 잘 자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고민도 했지만 이젠 그런 것쯤은 눈도 꿈쩍 안하게 됐다. 아마 이것도 타성에 젖었나보다.

 

이곳 주민들은 그래도 선량하고 온순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단지가 작고 특히 공사를 하면서 집집마다 안 가본 집이 없을 정도 였으니 주민들은 거의 다 안면이 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반갑게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그런다. 또한 노인분들이 많아서형광등 하나까지 다 갈아 줘야 할 집도 많고 심지어 다리가 아파서못 내려온다고 관리비도 받으러 오라는 할머니도 있다.

 

그런 분들한테는 조금만 잘 해 드리면 고마워 어쩔줄을 모른다.

70세가 넘은 노인 한 분은 나만 보면 꼭 모자까지 벗어들고 인사를 하신다.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소장님은 우리 아파트에서 제일 높은 어른인데 먼저 인사를 해야 도리제하신다. 그런 반면에 관리소장을 돈만 밝히는 도둑놈으로 보는 인간도 있다.

 

한번은 편지를 익명으로 써서 관리실 문에 끼워놓고 간 사람이 있었는데 차마 옮겨 적을 수 없는 내용들이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동대표들한테 돌려보도록 한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공사나 작업하는 것, 심지어 관리규약을 인쇄해서 배부하는 것까지 소장이 돈을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번은 건물주변 지반이 이삿짐 차가 다녀서 내려앉고, 비포장도로가 있어 비가 오면 질퍽거리므로 근처 공사장에 부탁해서 흙을 받아 복토를 하고 시멘트 폐기물을 잘게 부순 골재를 어렵게 구해서 바닥에 깔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직원들이 교대로 삽질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

 

주민은 모두 좋다고 하면서 직원들 고생한다고 술과 안주도 내어오는데, 한 사람은 자기 집 앞에 먼지가 난다면서 구청에다 폐기물을 무단 살포한다고 고발을 했다. 구청에서 와 보고는 소장님이 골치 아프겠다고 하면서 웃고 가버렸다.

 

또한 자기 집 변기가 잘 안 내려가니까 소방호스로 물을 쏘다가 물이 잘 안 나오니까 소방서에다 신고를 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소방서에서 점검을 나와 이것저것 지적하는 바람에 공사비만 들어가게 생겼었는데, 덕분에 소방시설 보수를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어서 나로서는 도움을 받은 샘이었다.

 

 

또 어떤 막돼먹은 인간은 술만 취하면 경비실에 와서 관리소장을 혼내줘야 한다면서 소장 집 전화번호를 대라고 행패 부리는 인간도 있다. 술을 안 먹었을 때는 나한테 인사도 잘 하는 넘이 그런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에 똥, 오줌을 싸기도 하고, 상습적으로 토하는 인간도 있는데 이곳은 복도식 건물이고 승강기 안에 CCTV도 없는터라 쉽게 잡을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청소아줌마들이 오래 붙어 있지 못하는 형편이고 어떤 때는 2~3일씩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서 주민들이 각성을 하도록 해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리사무소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꼭 몇몇 사람들이 그런다. 어떤 아줌마는 직원을 자기 집 종 부리듯이 할려고 하는데, 한 직원이 고분고분 말을 안 들으니까 잘라야 한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비방하며 다닌다.

 

 

나는 관리소장 경력이 짧아서 재미난 얘기거리가 없는데, 다른 소장님들 얘기를 들어보니 황당하고 배꼽 잡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많은 사람을 관리하다 보니 이제는 주민들이 투정부리는 어린아이로 보이기도 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자식들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아이들이란 춥고 배고프면 울고, 불편하면 칭얼대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저 투정을 받아주고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출처] [] 신출내기 관리소장(2)|작성자 이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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